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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한겨레, [이사람] 나는 꿈꾼다, 촛불이 필요없는 세상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2. 3.

[이사람] 나는 꿈꾼다, 촛불이 필요없는 세상
촛불집회 그림전 여는 민중미술가 허달용씨

안관옥 기자



» 한국화가 허달용(46·왼쪽 사진)씨와 작품 ‘촛불 연서’


지난해 금남로 집회 주도
가시지않은 분노 화폭에
“그림만 그리고싶은데…”

“한지 위에 피어난 촛불은 모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국화가 허달용(46·왼쪽 사진)씨가 지난해 전국 거리를 메웠던 촛불집회 장면을 섬세한 필치로 되살려 ‘촛불전’을 연다. 전시는 9~17일 광주시 동구 예술의 거리에 있는 원화랑에서 ‘촛불을 든 당신은 아름답습니다’라는 주제로 펼친다. 당시 촛불집회의 분위기를 돋보기로 보여주는 듯한 ‘촛불 연서’(오른쪽)와 ‘5월 광주’등 한국화 60여점을 선보인다.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자신과 세상을 밝혔던 촛불의 울림을 재현하려 했다”며 “촛불그림을 그리다보니 저절로 마음이 밝아지고 따뜻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5~8월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앞장서 이끌었다. 비상시국회의 광주실행위원장을 맡아 100일 넘게 화필 대신 마이크를 잡고 행사 차량의 임시무대에 올랐다. 민심을 어떻게 촛불로 표현할지, 촛불을 어떻게 그림에 담을지를 고민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수묵으로 촛불의 숨결을 살려내는 작업이 쉽지 않았어요. 새벽까지 거리에서 격렬한 구호를 외치다 화실로 기어들어가곤 했죠. 잠자는 시간을 쪼개 화필을 들어도 마음 속의 분노가 가시지 않는 거예요. 수없이 종이를 버려가면서 그림공부는 제대로 했습니다.”

그는 촛불을 그리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촛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간절하게 꿈꾸게 됐다고 했다. 작품마다 환하게 밝혀진 촛불에는 화가로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림에 전념할 수 있는 때가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는 그의 열망이 녹아있다.



“이제 집회 현장의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는 일은 접고 그림만 그리며 한가롭게 살고 싶어요. 예술가답게 분노보다 사랑을, 죽음보다 생명을 노래하고 싶은데 세상이 가만 두지를 않네요.”

그는 전형적인 ‘386세대’ 민중미술가다. 1989년 전남대 예술대를 졸업한 뒤 10년 동안 개인전을 5차례 열고 단체전에 50여번 참가하는 등 작품 활동에 열심이었다.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성품 덕분에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광주 촛불집회의 주역이 되면서 ‘금남로의 화가’로 유명해졌다. 요즘도 화실과 거리를 오가며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상임이사, 민생민주광주전남회의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중이다.

그는 “화가를 자꾸 화실에서 거리로 떠미는 시대는 불행하다”며 “작품 속의 촛불들이 불안하고 근심스런 분들한테 위안과 용기를 주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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