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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한겨레, "일년에 만화를 7천권씩 봤죠"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2. 3.

"일년에 만화를 7천권씩 봤죠"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밝히는 만화에 얽힌 사연

최종일 기자 | 2009/06/24 08:42 |


"1년에 수천권의 만화책을 봤습니다. 그 덕에 오늘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만화 100주년위원회 공동위원장이자 한국예술종합대 교수, 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시사만화가 박재동(사진) 화백은 최근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포럼에서 "만화가로 불릴 때 가장 자랑스럽다"며 만화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어린시절 만화가게 아들이었던 박 화백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하루에 20권씩 신간을 모조리 봤다. 1년이면 7000권이 넘었다. 지나친 만화사랑으로 고교입시에 낙방하는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당시의 자신을 모델로 명랑순정만화를 그리는 것을 계기로 만화 독자에서 작가로 첫 입문했다.

그러나 그는 직업으로 만화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단다.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박 화백은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다가 주위의 권유로 한겨레신문 시사만화가 모집에 응모하며 만화와 다시 인연을 맺게 된다.

8년간 시사만평을 그렸던 그는 당시 하루하루가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매일 공포심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사안의 핵심을 잡아서 몇 시간 만에 작업을 해내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체력이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시사만화는 사회의 가로등"이라고 말하는 그는 당시 치열한 작업 덕에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어떨 때 그림이 잘 나오면 짜릿한 황활감에 스스로 칭찬하기도 했죠. 그러다 나를 알아주기 시작했고, 나를 존중하는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습니다."

박 화백은 당시 만평 중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 당시에 그렸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우상의 은퇴로 밥도 먹지 않고, 학교에도 가지 않겠다는 한 중학생이 자신의 만평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는 것이다.

"'원한다면 더 큰 모습으로 다시 오렴, 젊음은 짧아도 예술은 기니'라고 멘트를 써넣었죠. 대게 권력과 자본에 대해 공격하는 만평을 했지만, 따스한 시선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참 기분이 좋았었죠."

"앞으로 만화도 아니면서 애니메이션도 아닌 색다른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힌 그는 "요즘 시사만화가 후배들이 참 잘 그리고,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졌다. 시사만화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박 화백은 '한국만화 100년, 만화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만화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시인만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듯 만화 역시 마찬가지"라며 "앞으로 독자와 만화작가 간의 관계가 허물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사실 옛날 사람들이 만화를 그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현재 만화는 보편화됐고, 그리기도 쉬워졌다. 게다가 재미도 전달할 수 있다"며 "만화가 새로운 시대의 어법이 될 것이다. 이모티콘 아바타 UCC의 사용이 전초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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