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의 눈길따라 내금강을 그리다
<금강전도> <풍악내산총람> 속 내금강 답사에 나선 민족미술인협회 화가들
▣ 내금강=글 노형석 기자
▣ 사진 류우종 기자
“겸재 선배님! 선배님 그림 자리에 이제야 왔습니다.”
혈기방장한 화가들 가운데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들은 금강산 내금강 최고의 전망대라는 정양사 헐성루터에 고즈넉하게 서 있었다. 내금강 53봉의 절경이 한눈에 잡힌다는 내금강 서북쪽 산기슭의 명당, 18세기의 대화가 겸재 정선이 내금강 전경을 한눈에 잡아 그린 <금강전도> <풍악내산총람>의 구도를 잡았다는 곳. 7월16일 오전 남한의 민족미술인협회(이하 민미협)의 몇몇 화가들이 분단 뒤 처음 여기에 올라왔다. 아스라한 개망초 꽃밭으로 덮힌 터 위에 가랑비가 흩뿌렸다. 그들 눈앞에 내금강 봉우리들은 두꺼운 구름 안개 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를 되풀이했다. 진경! 우리 산하의 사실적 풍경을 그 기운에 따라 주관적으로 주물러 빚어낸 진경 그림의 터전이 이곳이다.
헐성루터에 가득한 겸재의 <금강전도>
북쪽 안내원에게 화가들은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라고 우겨 오른 답사길. 그 힘든 곡절은 겸재가 <금강전도> 풍경을 어림했다는 헐성루터를 찾으면서 풀렸다. 개망초 꽃밭 너머로 겸재가 <금강전도>에서 남녀의 음양처럼 조화롭게 그렸다는 숲산, 돌산 이미지들이 여전히 어우러진채 흘렀다. 시선 북동쪽에 놓인 최고봉 비로봉은 구름에 가려 아랫자락이 보일락 말락, 그 아래 중들이 향로를 든 행렬 같다 하여 붙여진 중향성의 회색빛 뾰족 봉우리들이 창끝처럼 매섭게 에둘렀다. 향로봉, 영랑봉, 백운대, 혈망봉, 일출봉 등등의 봉우리 릴레이가 뒤따른다.
연봉의 어질어질한 절경에 막힌 숨을 돌리려 헐성루터 뒤 약사전 앞에 섰다. 끼익! 절집 문이 열렸다. 어둠을 걷어내고 고려시대 돌부처의 잔잔한 얼굴이 드러났다. 약사여래. 병으로 아파하는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구원하겠다고 맹세한 대자대비의 여래상이 회색빛으로 웃는다. 50년 전 산골을 휩쓴 전쟁 포화에 통째로 떨어져나간 어깻죽지를 다시 붙여놓은 고통을 그는 꾹 물린 채로 웃는다. 동자상이 새겨진 대좌 위에 앉아서 내리쏟는 미소 앞에 화가들은 스케치북을 꺼낼 생각도 못했다. 중견 화가 강행원씨는 잠자코 삼배를 올린 뒤에야 부처의 얼굴 사진을 찍었다. “경주 석굴암의 광채를 보는 듯 아늑하게 다가오는 그 얼굴에 모든 넋을 놓아버렸다”고 했다. 불과 5분도 안 되는 짧은 만남. 안내원들이 문을 닫자 명당 정양사의 고려 부처는 다시 천년의 고독 속에 잠겼다. 화가 김윤기씨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석조불의 인상에 나도 모르게 합장을 했다”며 “작업에 큰 영감을 줄 것 같다”고 했다.
옛 사람들은 해질 녘 이곳에서 금강산 보는 것을 최고의 낙으로 쳤지만, 이 멋진 진경의 로망을 현세의 남쪽 화가들은 비 뿌리는 오전에 서둘러 풀어야 했다. 6월1일 내금강 관광이 시작된 이래 조계종 순례단에 이어 민미협 기행단에게 두 번째로 개방된 정양사에서 내금강 전경과 약사전 여래상을 본 것은 이번 내금강 기행에서 가장 기쁜 한순간이었으나, 촉박한 시간 일정 앞에서 이 절경을 본 이들은 극히 일부였다.
바위자락 펼쳐지자 너나없이 스케치를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의 진경산수 그림의 소재로 익숙한 금강산 내금강은 200년 뒤 한 떼로 몰려든 후대 화가들에게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장맛비와 두꺼운 구름 때문이었지만, 간간이 맛본 진경의 묘미는 싱겁지 않았다. 내금강이 일반에 개방된 이래 처음 남녘 화가들이 한 떼로 몰려들어 답사 스케치를 하는 기행은 7월15~17일 외금강 답사와 같이 이루어졌다. 진경 그림의 메카인 내금강에서 남쪽 화가들의 집단 사생 기행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앞서 지난 7월15일 설렘 속에 버스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 장전항 펜션에서 1박을 하고, 온정리와 온정령을 거쳐 목가적 풍경이 인상적인 금강군의 북한 농촌을 통과하고 장안사를 지나 표훈사에 들어간 것이 16일 오전 9시50분. 청학봉, 돈도봉, 오선봉, 천일대가 병풍처럼 감싼 표훈사의 반야보전 앞에서 ‘우리는 통일을 그린다’는 플래카드를 놓고 민미협 답사단은 기념촬영을 했다.
정양사를 제외한 스케치 기행의 핵심 자리는 단연 만폭동 계곡 들머리의 금강대와 그 아래 너럭바위였다. 표훈사에서 조금씩 걸어 올라가다가 눈앞에 갑자기 폭 200m 이상의 평평한 운동장 같은 바위자락이 펼쳐지고 이들을 굽어보는 금강대의 웅장한 모습이 보이자 너나 할 것 없이 콩테(목탄), 연필을 꺼내들고 스케치를 했다. 강요배 민미협 회장은 우산을 펼친 뒤 그 아래 스케치북을 놓고서 사생 삼매경에 빠졌다. 이미 10년 전에 내금강을 갔다온 그는 다른 사람은 다 올라가는데도 꿈쩍도 않고 사생만 했다.
“여기가 내금강 경치의 최고 알짜이니 다른 데 갈 필요가 없어요. 진경? 우리 내부의 환상일 뿐이지, 좋은 풍경도 결국 우리 마음이 만드는 것 아닌가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를 말하는 강 작가는 겸재와 단원이 만폭동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목에 쪼그리고 앉아 콩테를 집어들고 쓱쓱싹싹 금강대와 그 아래 너럭바위의 풍경을 그려넣었다. “애초부터 그림이 다 된 풍경이야. 자리만 잡으면 구도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김일성 주석의 부친 김형직이 썼다는 ‘지원(志遠)’이란 한자 글발이 새겨진 금강대 암벽과 넓은 계곡 바위 무더기의 각진 모양새들이 유려한 질감의 선으로 스케치북 위에 뽑아져나왔다. 북쪽 안내원 남은정씨가 김삿갓의 시를 들려주자 새소리, 물소리를 더해 붓 가는 대로 눈 감으면서 추상적인 선 그림도 그려낸다. 옆에서는 판화가 김준권씨가 역시 간이 스케치북을 꺼내들고 금강대를 그리고 있었다. “숲과 암산이 절묘하게 서로를 뒤섞은 편안한 분위기가 꼭 여성의 자궁 같다”고 김씨는 감흥을 전했다.
“겸재는 뻥이 너무 세다”며 농담도
여성작가 안성금씨는 만폭동 들머리를 감싼 암벽 숲을 열심히 스케치하고 있었다. 절경을 싸안는 숲 절벽의 느낌이 너무 편안하다고 했다. 부산 쪽에서 활동하는 청년작가 배인석씨는 “너무 현란한 경치가 마치 날라리 여자를 보는 듯하다”는 이색적인 평도 내놓았다. 그는 “백룡담, 흑룡담, 화룡담 같은 계곡 연못과 큰형님 같은 묘길상 부처를 주로 담았다”며 “금강산 그림으로 유명한 소정 변관식의 그림 자리를 확인하는 잔재미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필름 찍듯 여정을 기록하고 꼼꼼히 스케치를 한 중견 화가 두시영씨는 만폭동 오르는 길에 본 주요 명승과 식물 등의 꼼꼼한 스케치를 내보였다. 법기봉 산자락 아래 위태롭게 매달린 암자 보덕암에 그는 매혹된 듯했다. 그는 “지금은 편하게 올라왔지만, 옛적 겸재는 지극히 험한 길을 올라가면서 그렸기에 그릴 때의 감동이 더욱 북받쳤을 것 같다”며 자신 또한 절벽이나 난간에 매달려 그때의 마음으로 보덕암을 그려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 빛을 제대로 음미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화가들은 오감을 총동원해 영기를 느껴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내려오는 길에 강요배 회장은 뜻밖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만폭동 계곡물에 발을 적시지 않으면 불경이라면서 계곡물을 휘휘 건너갔다. 금강산에 미친 조선 선비 봉래 양사언의 글발이 새겨진 너럭바위 위에서 몸짓 퍼포먼스를 했다. 그의 글씨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의 글자 홈 속에 일일이 손을 넣고 획대로 휘휘 저으며 큰소리로 글자들을 외치며 빙빙 돌았다. “정선의 만폭동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너럭바위와 금강대는 내금강 풍경의 성감대”라고 단언했다.
진경 그림의 메카로 꼽히는 내금강 답사는 화가들에게 겸재의 내금강 그림이 실제 풍경과는 큰 거리가 있으나 현장에서 느껴야만 나오는 그림이라는 것을 일러주었다. 단원과 김응환, 최북 같은 다른 18세기 화인들도 대부분 실경과 똑같이 그리지 않았으나 자연의 기세에 마냥 압도되지 않고 회화적 상상력을 끝까지 견지하면서 일궈낸 작품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겸재는 ‘뻥’이 너무 세다”라고 일부 화가는 농담하기도 했지만, 풍경을 미술적으로 재해석하는 천부적 재능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는 반응들이었다. 옛 화가들 마음으로 들어가려 했던 민미협 회원들의 내금강 체험은 분단 상황이 빚은 관람 시간 제한의 압박에 충실히 영글지 못했다. 빨리 움직이라는 안내자의 강권 속에 아쉬움과 환희를 안고 화가들은 온정리행 버스를 탔다. 화가들은 답사 스케치를 바탕으로 8월14~21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리는 ‘2007 코리아 미술전’에 작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민미협 아카이빙 > 2000년~2009년대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려한 휴가' 릴레이 운동 합시다~! (0) | 2020.11.24 |
---|---|
‘본다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이다.’ / 영광문화원 기획사진전 (0) | 2020.11.24 |
[컬쳐뉴스]금강산에서 평화와 통일을 그리다 -홍선웅 판화가 (0) | 2020.11.24 |
<화려한 휴가> 민예총 특별시사회 (0) | 2020.11.24 |
[사진]천하제일 금강산(金剛山) 스케치 여행(0715-0717일)- 부제:우리는 통일을 그린다 (0) | 2020.11.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