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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컬처뉴스, “약속 지키셨네요, 장관님”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29.

[기자의 눈]문화부의 어설픈 '좌파 적출'을 바라보며

안태호 기자



▲ 유인촌 문화부 장관.(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약속 지키셨네요, 장관님. 그렇게 ‘이전 정부의 색깔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몰아내실 거라 호언장담을 하시더니 아홉 달이 지났어도 잊지 않고 결행하셨네요. 맞아요, 원래 그런 분이신 걸 제가 잠시 잊고 있던 것 같아요. 원래 ‘의리파’셨잖아요. '한다면 하는 거'고, ‘인연’을 허투루 보지 않으셨지요. 드라마에서 맺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인데, 더군다나 한 나라의 장관이라는 자리에 계시면서 뱉은 말을 함부로 주워 담을 순 없는 거겠죠. 그때 당시에야 여론이 워낙에 따가웠으니 잠시 물러나는 포즈를 취해봤을 뿐이고. 하긴, 두 걸음 뛰기 위해 반걸음쯤 물러나는 게 뭐 그리 어렵겠어요. 원래 멀리 보는 사람들은 그런 거 두려워하지 않잖아요. 그때 김윤수 관장이나 김정헌 위원장과 만나 사진도 찍고 그러셨던데. 사과했다고, 화해했다고 이런 저런 훈훈한 장면들을 많이도 연출하셨던데 혹시, 그것도 '직업적 특성'에서 나오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당시에는 역시 인정할 건 인정할 줄 아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뭐가 진실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말이죠, 약속을 지킬 땐 지키더라도 구실은 좀 제대로 꾸리셨으면 좋을 법 했어요. 작품구입 과정을 물고 늘어지는 거나, 기금운영을 문제 삼는 게 좀 ‘쪼잔’해 보였어요. 김윤수 관장이 해임사유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을 한 후에 저는 행여라도 문화부에서 재반박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너무 명백한 증거들을 가지고 반박을 하셨거든요. 이를테면 ‘작품구입위원회가 작품구입을 결정하기 전에 작품구입 의사를 밝힌 메일을 판매자에게 보냈다’는 게 해임 사유의 하나가 됐는데, 김윤수 관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구입을 위한 전제조건들을 나열한 메일이었다’고 하더라구요. 문화부가 의도적으로 사실왜곡을 한 셈이지요. 예술위는 더해요. C등급 기관에 투자한 게 문제가 된다고 했는데, 그거 법령이나 규정에 나온 게 아니라 감사 지적사항이었대요. 이후에 조치사항도 아직 내려오지 않은 걸 무슨 범법을 저질러서 기관에 큰 손해를 입힌 것처럼 꾸미셨더라구요. 한 50억쯤 된다고 하던가요. 물론, 큰돈이지요. 근데, 문화부에서 관리하는 관광기금은 70억 날리셨다면서요. 거기 책임질 준비 되셨어요? 전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주식투자 손실 어쩌구 하는 얘기는 길게 하지 않을래요. 덩치 큰 연기금들이 수 조원씩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겠죠.

근데 이거, 예술계를 무시하는 처사거든요. 이런 정도로도 너희들 따윈 날려버릴 수 있다, 라고 으름장 놓는 꼴이예요. ‘정권이, 권력이 무섭긴 무섭구나’라고 생각한 사람, 저 뿐만은 아닐걸요? 현대미술관이라고 하면 한국미술계 최고의 기관이잖아요. 관장은 그만큼 상징적인 자리구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안 그런가요? 툭하면 몇몇 보수언론에서 ‘천 억 원이나 되는 자금을 주무르는 문화예술계 노른자 자리’라고 하잖아요. 물론, 돈으로만 예술을 재단하는 게 얼마나 천박한 논리인가요. 예술위가 단지 기금만 기계적으로 나눠주는 곳 아니라는 거야 저보다 장관님이 더 잘 아실 테니 생략할게요. 다만 그만큼 중요한 기관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잖아요. 현대미술관 관장도 예술위 위원장도 그리 호락호락하고 만만한 자리가 아니고, 예술계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진 자리라는 거 아시면서 왜 그러셨어요? 그런 걸 아셨기에 3월달에 이야기하실 때도 두 분 실명 거론하신 거잖아요. 가장 상징적인 자리에 ‘철학을 달리하는 분’들이 앉아계셔서 말이죠.

근데 이거, 예술계에 대한 모독이거든요. 이렇게 모양새 안 나게 기관장들 언제든 내쫒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관치행정이거든요. 예술계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이, 알만한 거 다 아실만한 분이 왜 그러셨는지 퍽 궁금해요.


문화부의 해임사유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윤수 관장과 김정헌 위원장.  


어떻게든 자리를 비우긴 해야겠는데, 적당한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구요? 아무리 찾아도 그 정도밖엔 해임사유를 발견하기 힘들었다구요? 결국 그분들을 이렇게 해임한 건 그분들이 해임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증명하신 꼴밖엔 안 되는 일이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해임불가를 증명하기 위한 어설픈 해임사유 발굴이랄까요. 참, 그걸 기사라고 써야하는 제 처지는 생각해 보셨어요? 너무 무안해서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겠더라구요. 다른 매체들은 두 분 인터뷰도 하고 그러는데, 저는 정말 무안해서 할 수가 없더라구요. 뭐, 할 말이 있어야죠.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따져 묻고 확인하고 그럴 게 있어야지요.

말씀드리는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부작용’도 좀 생각해 보셨어야죠. 지금 ‘인사청탁 논란’ 일고 있는 거 아시죠? 예술정책과 박모 과장이 김정헌 위원장한테 이력서 두 장 들고 가서 골프장에 취직시켜달라고 떼썼다면서요? 거 참 재밌데요. 출력한 곳이 ‘대통령실’이라고 찍혀있는 이력서도 있었다던데. 그분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서 열심히 뛰었던 분들이라고 하더군요. 박모 과장은 한사코 자신이 ‘인사협의’를 하러 간 거라고 우기던데. 인사권자(뉴서울골프장 인사권자가 예술위 위원장인 건 아시죠?)에게 주무과장이 압력 넣는 걸 요즘엔 그렇게 부르나보죠? 혹시 좀 더 자세한 정황을 아시는 게 있으실까 모르겠네요. 그러게 좀 치밀하게 준비하시지 그러셨어요.

이거 하나만 더 이야기해야 쓰겠네요. 김윤수 관장 해임일이 11월 7일, 김정헌 위원장 해임일이 12월 5일이었어요. 모두 첫째 주 금요일이었더라구요. 우연이라면 기막힌 우연일테지만, 세간에서 ‘금요일의 대학살’이라고 부르는 거 아시나요? 언론은 생생한 고기를 좋아하죠. 금요일에 터진 사건이 일단 한 두 차례 보도되고 나면, 새 주가 시작될 때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싱싱한 먹잇감들로 지면이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뭐, 모르실리 없겠지요. 근데, 그것도 아시나요? 그거 참 구차한 짓이라는 거 말이죠. 그렇게 잘못이 많은 사람들이라면서요. 법에도 상관없이, 남겨진 임기도 아랑곳 않고 해임을 밀어붙일 만한 이들이면 좀 더 떳떳하게 발표할 순 없었을까요. 당당하면 당당하게 발표할 것이지 왜 그리 쥐구멍에 숨듯이 치졸한 방식으로 발표하세요? 원래 뒤가 켕기는 사람들이나 그러는 거 아닌가요?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듯이 사시는 분들께서 왜 그리 소심하게 사시는지 저로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드리는 말씀이예요.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려요.

아무튼, 이렇게나 약속을 잘 지켜주시는 장관님이 계시니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품격 있는 문화국가, 대한민국’을 만드신다고도 약속하셨죠?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요. 장관님 재직하시는 동안에 대한민국은 ‘품격 있는 문화국가’로 거듭나는 거잖아요. 저 같은 사람들은 괜히 문화정책이니 문화현장이니 살펴보겠다고 설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따로 고생할 필요 없이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잠이나 자면서 장관님 하시는 일이나 지켜볼라구요.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이 좀 맘에 안차셨더라도 너무 맘에 두지 마시고, ‘품격 있는 문화국가’ 꼭 만들어주세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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