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초에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미술은행(art bank)'제도는 국가가 미술품을 구입해 싼값에 대여서비스를 한다는 점에서 열악한 환경에 허덕이는 미술계의 사람들과 그 애호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미술은행 운영방향을 놓고 누가 몫을 더 챙길지, 수익성을 중시할지, 작품성을 따질지에 관한 무성한 목소리들이 오갔지만 어느 분야에 편중하고 어느 장르는 배제시킨다는 따위의 몰상식한 사례는 없었다.
이제 전남 도에서 박준영 지사의 공약사업의 하나인 ‘남도예술은행’의 설립운영이 실천단계에 들어섰다. 11인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와 10인의 작품 구입 심사위원회를 두고 금년에는 7천만 원, 내년부터 4년간 매년 2억 원씩 투입하여 2009년까지 총 2000점의 작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남도예술은행’에서 지원하는 작가의 출품 장르는 한국화, 문인화, 서예에 국한하고 양화, 판화, 수채화, 조각, 공예 등은 배제시켜버렸다.
우리는 여기서 전남도청의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구태의연한 미술행정에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운영위원회 구성의 부당성을 직감하면서 이들의 문화 권력의 남용과, 남도미술을 왜곡하는 편향된 시각에 치욕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화선지에 수묵으로 표현하는 한국화, 문인화, 서예는 전통적 남도 미술이기 때문에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미술흐름과 상황, 그 현주소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알면서도 내세우는 억지 논리일 뿐이다. 이제 회화의 영역에서 동 서양화를 구별한다는 것은 무의미해진지 이미 오래다. 근 현대 회화에서 의제와 남농은 남도 미술에 공헌을 했고 오지호나 김환기는 남도적 감성에 기여를 한 화가가 아니란 말인가? 우리 서양화가들도 사용하는 재료만 달랐을 뿐이지 전라도라는 역사의 공간에서 희노애락을 나누며, 소외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남도인들의 삶을 조명하고 남도의 산하와 정서를 화폭에 담으며 남도미술을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바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도 특유의 예술성과 정통성을 확고히 하여 예향의 맥을 잇는 주체에서 제외당한 우리 서양화가들은 수치와 모욕과 좌절을 느끼며 절필하고 싶은 심정 앞에 서게 되었다. 마치 국민의 정부 이전 호남이 소외되고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기분을 박준영 도지사에게서 느낀다면 과장된 표현이라 하겠는가? 앞으로 5년간 ‘남도예술은행’에서 한국화, 문인화, 서예 장르만 지원하여 활성화시키고 서양화는 위축 내지 고사시키겠다는 음모가 아니라면 현 운영위원회를 즉각 폐지하고 원칙과 형평성에 맞는 운영위원회를 다시 구성하여 새 출발을 하여야 한다. 또한 새롭게 구성되는 운영위원회에는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예가, 문인화가, 한국화가를 포함시켜서는 아니 된다. 전남의 미술인 중엔 그만한 인물이 없어서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것인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기회에 남악 신 도청 벽면에 전시된 수많은 미술작품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신 청사 환경정리를 위해 거액을 들여 매입한 작품들이 한국화, 문인화, 서예작품 일색이고 서양화는 구색 맞추기 용으로 겨우 10여점 걸려져 있을 뿐이다. 남도예술은행에서 추진하는 한국화, 문인화, 서예 장르 봐주기 사업과 일맥상통하는 결과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도대체 작가 선정은 누가 했으며 그 매입 대상 작가의 자격과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또 작가별 작품 크기와 작품대금의 차별이 심하다는데 무슨 잣대를 이용해 그리하였는지에 관해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 남도의 예술인들은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 역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멋진 이미지와 균형감각을 믿고 박준영 도지사를 열렬히 지지하였다. 그러나 이번 형평을 잃은 예술정책을 추진하려함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보편적 상식조차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거만해진 도 예술행정의 무모함을 방치 또는 묵인하는 도백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기대도, 지지도 할 수 없음을 천명하면서 다음 사항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다 음
1. 원칙과 형평성을 잃은 남도예술은행 운영위원회를 즉각 폐지하고 상식에 맞는 운영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라.
2. ‘남도예술은행’에서 추진하는 한국화, 서예, 문인화 중심의 공모를 즉각 중지하라.
3. ‘전라남도 문화예술재단’의 창설과 새로운 형태의 예술은행 설립을 위한 기초조사와 토론회를 개최하라.
4. 남악 신 도청의 미술작품 구입과정과 작가 선정위원회 위원명단 및 구입 대상작가 자격기준을 설명하고 작가별 작품대금 지급내역을 공개하라.
5. 예술가들의 창작의욕이 관료들의 행정편의와 결탁 때문에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대책 마련을 약속하라.
위의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전남도의 모든 예술행사의 참여와 협조를 거부할 것이며 전국적으로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 전남도의 독선적 관료주의 예술행정 개혁을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이다.
2005. 11.
한국미술협회 목포지부 이사회 이사 일동
(가칭) 전라남도 서양화가 협의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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