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5-01-24 16:49]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기자]정부는 지난해 12월 30일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주어지는 상의 명칭을 현행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등에서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문화관광부장관상’ 등으로 개명하자는 미술계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김정헌(화가) 문화연대 상임대표는 정부의 결정이 ‘귄위주의 시대로의 회귀’이자 ‘미술계의 매명욕구와 줄서기 관행’을 부추기는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김 상임대표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이 식민지 지배에 봉사하는 예술을 획책했던 조선총독부의 '선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바뀐 상의 이름이 더 적나라한 미술계 비리를 양산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정부의 이번 결정을 우려하는 현장 미술가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한다는 차원에서 이 글을 게재한다. 이와 관련된 문화관련 정부부처와 한국미협의 반론도 언제든지 환영한다... 편집자 주
정말 ‘악’소리 밖에 안 나온다. 참여정부 들어서 내가 들은 미술계에 대한 최악의 소식이다.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 가고 있다. 그 어려웠던 군사독재정권 시절 미술운동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다니 참담한 심정이다.
소위 ‘국전(國展)’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전람회’의 전신은 일제 문화통치의 하나로 시작된 조선총독부전람회인 ‘선전’이다. 일제는 이 ‘선전(鮮展)’이라는 등용문을 통해 미술가를 사회에 배출했고 그들을 태평양전쟁을 미화하고 선전하는 데 동원했다. 해방이 되면서 남북이 분단되고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남쪽의 대한민국 정부는 오히려 친일 미술가들의 주도로 ‘선전’과 똑같은 제도인 ‘국전’을 만들게 된다.
획일주의와 파벌, 눈치 보기 양산한 제도를 부활시킨다고?
우리나라 미술의 불행은 바로 여기 ‘국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전’은 진정한 미술이라면 기피해야할 온갖 형식주의, 어설픈 관학주의, 획일주의, 파벌, 권위, 아부, 줄서기, 눈치 보기, 갈라 먹기 등의 온상이었기 때문이다.
한때 회화에서 태극선을 들고 앉아있는 여인상이 대통령상을 받으면 그 비슷한 아류들이 그 다음해 ‘국전’에서 대부분 입선 이상을 하게 된다. 그 당시는 심사위원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한 나라 미술계가 판도가 바뀔 지경이었다.
이러한 어설픈 관학아카데미즘이 한동안 ‘국전’을 장악하고 있다가 이들을 물리치고 추상미술이 입성하게 된다. 추상미술의 주도권 장악으로 ‘국전’의 내용이 좀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소위 나라에서 베푸는 전람회인 ‘국전’의 여러 가지 폐단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끊임없는 말썽으로 할 수 없이 1986년 ‘국전’의 이름을 ‘대한민국 미술대전(이하 미술대전)’으로 바꾸고 형식적으로만 민간단체인 한국미협이 이 행사를 주관토록 한 것이다. 다만 그동안 시행되어온 그 이름도 휘황찬란한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등의 권위주의적 수상제도를 대상, 우수상으로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이러한 공모제도는 원조인 프랑스와 일본에서 이미 없어졌거나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국가적인 규모의 국전을 거쳐 미술대전으로 대를 이어오고 그 뒤를 이어 지방 광역시도에도 똑같은 형태와 제도로 규모만 작게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공모전 제도는 이 운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단체의 이기주의와 이 공모전을 통해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 미술인들에게 유일한 통로로 인식되기 때문에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직도 대부분의 대학들의 교수초빙과 승진의 연구경력 실적에는 이러한 미술대전의 입상여부가 상당한 점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공모전 말고도 다양한 기획전시와 작가 참여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들은 반영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 등 사회 진출에 유리한 이런 조건들은 미술대전으로 바뀐 다음에도 이 대전을 비리의 온상으로 만들고 있다, 이 실례로 1~2년에 한번 꼴로 운영위원과 심사위원들의 수상자 담합, 금전수수 등이 폭로되고 거기에 관여했던 미술인들이 수사를 받는 사건들이 터지곤 했다.
기대에 전혀 못 미치는 한국미술협회의 개편안
이번의 개편안은 미술대전의 한계와 그동안 비리의 온상으로서 인식될만큼 잘못 운영되어온 제도적 관행을 쇄신하고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전시 개념을 도입하라는 취지로 미협에 자체적 안을 내게 했을 것이다. 일종의 개혁안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협이 문화부와 문예진흥원의 승인을 받았다는 이 개편안은 도대체 무엇인가?
땅에 떨어진 미술대전의 권위를 되살리기 위해 권위주의적 발상이라 하여 예전에 없애버린 수상제도를 되살려 ‘대통령상 3000만원’, ‘국무총리상 2000만원’, 문화부장관상1000만원‘으로 하는 것이 이 개편안 의 골자다.
어차피 관 성격을 띤 문예진흥원의 돈을 지원 받아 상금을 주는 것이니 관직의 이름을 팔고 상금을 대폭 올려 주자는 것이다. 대상을 대통령상으로 바꾸고 상금을 몇 배로 올렸다고 해서 그 말썽 많은 수상자 담합과 금전수수 등의 비리가 근절될까? 오히려 권위(?)에 빛나는 ’대통령상‘과 올라간 상금에 눈이 멀어 더 비리가 만연하지는 않을까?
이 개편안을 한국미협에 의뢰한 자체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지만 정작 이러한 거꾸로 가는 개편안을 승인했다는 문화부와 문예진흥원의 처사는 더 이해할 수 없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대통령상’ 등의 권위주의적 수상제도로 되돌아가겠다는 이러한 개악안(?)을 어떻게 승인해 주었는지, 이 정부가 정말 참여정부가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전임 이창동 장관 시절 만든 ‘문화비전 21’이나 ‘새 예술정책’ 계획안의 신뢰성을 의심케 만든다. 더군다나 정동채 장관 들어서는 기초예술에 대한 정책이 무엇인지 들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기초예술에 대한 진흥정책은 말 그대로 모든 문화진흥정책의 기본이다.
미술 분야에서 상당한 지원 비중을 차지하는 미술대전에 대한 정책이 고작 이런 개편안을 승인하는 것으로 진행된다면 문화부의 기초예술진흥정책 의지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이러한 안을 한국미협으로부터 받아 문화부에 올린 문예진흥원의 일처리 방식도 또한 백번을 양보해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공정하고 투명한 심사제도만이 미술인의 자긍 가져다줄 것
미술대전에 대한 개혁은 이번 안을 만든 미협 집행부를 제외한 대다수 미술인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그동안 이 미술대전의 비리가 터질 때마다 미술인들은 다같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심적인 고통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 김정헌 문화연대 상임대표.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미술대전과 같은 공모전 제도는 이제 사라져야한다. 이러한 공모전은 일제의 ‘선전’을 이어 받아 ‘국전’으로 출발할 때에는 얼마 안 되는 미술인들의 사회적 출세의 발판으로 사용되어도 별 탈이 없었지만 지금처럼 복잡다기한 미술인 단체와 조직들, 다양한 미술전시 방법들과 그를 뒷받침하는 화랑, 미술관, 미술시장들 속에서는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운영될 수 없다.
이러한 공모제의 핵심인 수상제도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는 심사제도란 없기 때문이다. 미술은 기능으로 그 우열을 따질 수 있는 하위문화가 아니다. 미술의 힘을 기능적인 것으로 계속 축소시켜온 미술대전 같은 공모제도의 존폐를 이제는 미술인들이 나서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오마이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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