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방 대추리_바그다드
이종구 회화·설치展
2006_1208 ▶ 2006_1218
초대일시_2006_1208_금요일_05:00pm
평화공간 스페이스피스 기획초대전
평화공간 스페이스피스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99-1
Tel. 02_735_5811~2
www.peacemuseum.or.kr
두 개의 방_평화를 위한 ● 지금 대추리는 더 이상 기름진 쌀을 생산하던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 아니다. 주민의 일부는 보상을 받아 마을을 떠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오직 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힘겨운 외침 속에 대추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 대추리 사람들은 온전한 삶을 잃어버렸다. 오랫동안 사람과 사람, 땅과 사람이 만들었던 공동체가 뿌리 뽑힌 것이다. 한편 이라크바디카운트(www.iraqbodycount.net)는 오늘(11월20일) 현재 52,483의 숫자를 전한다. 이는 2003년 이라크전쟁 이후 현재까지 미 군사작전으로 사망한 이라크 민간인의 숫자이다. 그러나 이라크 보건부는 최근 15만 명의 이라크인이 사망했다고 추정 발표했다. 나아가 최근 미국 존스홉킨스대가 조사 발표한 사망자 수는 더욱 충격적이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655,000명으로 이라크 전체인구의 2.5%에 해당한다고 한다. 매달 15,000여명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종구_그대에게-대추리·도두리에서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65×260cm_2006
지금 지구상에선 이라크가, 한반도에서는 대추리가 심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두개의 땅에서 들리는 신음의 근본에는 공교롭게도 배후에 미국이 있다. 미국은 세계평화를 위한 명분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 대추리에 군사기지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벌이고 이러한 일들은 결코 인류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지난번 미국인들이 총선에서 보인 선거 결과만 보아도 그렇다. 나는 하루 빨리 이라크바디카운트가 멈추고, 대추리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수 있는 평화의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나의 ‘두개의 방’은 그러한 희망을 간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종구_대추리의 세월_사진설치_2006
방1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대추리에서 ● 금요일 아침 다시 대추리로 갔다. 지난 월요일부터 이틀간 학생들과 함께 벽화작업을 시작했는데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날은 다섯 명이 작업을 해서 제법 진도가 나갔으나 둘째 날은 세 명이 작업하는 바람에 간단한 그림인데도 다섯 곳의 벽화를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벅찼다. 더구나 다음날 수요일은 다른 일정이 있는데다 장마가 온다고 해서 날도 잡지 못한 채 작업을 중단했던 것이다. 기상예보대로 다음날은 비가 왔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 오늘은 미처 완성하지 못한 그림들을 다듬고 스텐실 기법으로 그림 곁에 글씨를 박아야 한다. 내용은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 이 구호는 사실 전략적 유연성을 앞세워 평택에 동북아의 전진기지를 세우려는 미국과, 이에 기지를 확장해 주려는 정부의 행태 앞에서 너무도 소극적인 발언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대추리의 농부들에게 이 말은 너무도 절실한 외침이요 절규이다. 이들은 지금 무엇도 원하지 않고, 오직 그동안 살아온 대로 고향 땅에서 내 땅을 일구며 살아가게 해달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소박하고도 간절한 호소? ?묵살되고 있으며, 나아가 마을도 곧 파괴될 운명에 처해 있다. 글씨 쓰기는 간단한 작업인데도 밖에서 작업하다보니 일이 더뎌 오전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그 사이 천성산을 지키던 지율스님이 부실한 몸을 이끌고 잠깐 다녀갔고, 마을 사람들은 군 당국이 이틀간 영농을 허가했으므로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 지난 해 가을 파종한 마늘이며 보리를 수확하느라 분주했다. 그동안 농사의 기능이 정지되었던 마을은 잠시 여느 농촌 마을처럼 활기가 돌았고, 무슨 특별한 날처럼 들떠 있는 것 같았다. 농촌에서 마늘 캐고 보리를 수확하는 날이 특별한 날이다? 그러나 이 마을의 논밭은 대개가 철조망에 막혀있고 웅덩이로 파헤쳐졌으며 거기에 군인과 경찰이 영농을 막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농사짓는 땅을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어놓고 철조망을 쳐놓았기 때문이다.
이종구, 강석, 엄윤섭, 오천택, 장재우_내땅에서 농사짓고 싶다_벽화_2006
오후 들어 마무리되지 않은 그림들이 있는 장소를 옮겨가며 작업하다 보니 더딘 작업과 달리 시간은 아주 빨리 지나갔다. 작업하느라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뜨거운 햇볕이 들어와 팔뚝을 따갑게 태웠다. 그러는 사이 미군부대에서 오후 일과 종료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났다. 벌써 다섯 시가 된 것이다. 아직도 두 작품을 더 마무리 해야 하는데 오늘 다 마치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꼬박 삼일을 작업했는데도 대략 마무리 된 그림은 세 점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그림들도 곧 마을과 함께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정부에서 고지한 이주 마감 시한이 유월 말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겨우 일 주일 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그림을 위해 무모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을 바쁜 일을 핑계로 미루다가 뒤늦게 시작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러나 며칠 동안이나마 이 그림들로 하여금 마을 사람들이 작은 위안을 받고 희망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종일 뙤약볕에서 일 한 탓에 힘도 들고 또 저녁에 있는 약속 때문에 일단 짐을 정리했다. 물감과 여러 도구들을 챙겨 자동차에 싣고 대추리를 빠져 나왔다. 나오는 길에도 평화로! 운 농촌 들녘에 설치된 철조망과, 두개의 검문소와, 순찰하는 경찰들을 수없이 만났다. 마치 전방의 철책선 부근 같다. 황새울 들녘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마을 대추리는 이미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아니다. 오래전 바다를 막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외딴섬인 것이다.
2006. 6. 23 대추리벽화 작업노트
이종구_주인을 찾습니다_지퍼백, 오브제_가변설치_2003
방2 주인을 찾습니다-바그다드에서 ● 전쟁이 나고 한바탕 폭격이 지나간 2003년 8월, 바그다드에서의 어느 날 새벽 숙소 근처의 주택가 골목을 산책하다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버려진 교과서와 노트 한 무더기를 발견했습니다. 흙먼지를 털면서 무심코 책장을 넘기던 순간 나는 섬 짓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과서 주인공의 생사가 갑자기 궁금했던 것입니다. 낡은 교과서에는 책갈피마다 아랍어 글씨들이 깨알 같이 적혀있었습니다. 낙서와 제멋대로 그린 그림들도 있어서 우리나라 여느 초등학교 아이의 교과서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교과서가 쓰레기 더미에 함부로 버려졌는지, 행여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것인지...... 그렇다면 이것을 사용하던 아이는 어찌되었을까.....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수습하여 여행가방에 소중히 챙겨 넣었습니다. 잠시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 그것 말고도 바그다드의 거리에서 많은 물건들을 습득하고 채집을 했습니다. 황급히 폭격을 피해 뛰어가다가 벗겨졌을 것만 같은 한 사내의 떨어진 구두창, 누군가가 마시다 버린 펩시콜라 깡통, 구겨진 이라크 산 쉬메르 담배 갑, 꽁초, 부? ??라이터, 피카추 캐릭터가 그려진 빙과 껍질, 사랑하는 이가 보냈을 법한 편지, 박물관에 뒹구는 깨진 진열장의 유리파편, 심지어 미군들이 거리에서 작전 중에 먹다버린 군용 비상식량이나 불타다 만 이라크 군 장성의 사진까지 나는 닥치는 대로 줍고 수집했습니다. 이 물건들에서 전쟁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물건의 주인공들이 어쩌면 현재 지상에 부재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가정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쟁 때문입니다. 나는 돌아와서 바그다드에서 습득하고 채집한 물건들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물건들은 사실의 증거로서, 전쟁의 실상을 증언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내가 해오던 회화의 평면적인 표현방법으로는 잠깐 목격한 전쟁의 상처를 도저히 담아낼 자신이 없습니다. 어쩌면 회화의 형식이란 예쁜 포장지와도 같아서 어떤 내용을 실감나고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데 조금은 둔감하고, 또 과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현장에서 채집한 오브제야 말로 전쟁의 비인간화를 사실과 구체로서 보여주는데 아주 충실한 리얼리즘의 도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종구_바그다드에 핀 꽃_사진, 마른꽃_32×42cm_2006
이종구_이라크바디카운트061112_사진, 아크릴 채색_90×180cm_2006
이 물건들이 개별로서, 또는 작품이라는 포장된 형식으로서 이라크 민중의 상처를 세상에, 그리고 인류의 양심에 호소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하였으면 합니다. 더불어 이라크전쟁의 이름을 빌려 문명인의 양심으로, 또는 작가의 이름으로 나는 반전과 평화를 외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바그다드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을 때 이 물건을 들고 그들의 삶과 일상으로 찾아가 주인공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 들 주인공을 당장 만날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만, 지상의 어느 곳에서든 그대들의 삶이 무사하고 평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행운이 있으시길! ■ 이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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