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삐라’ 패러디 퍼포먼스, 경찰 진압으로 무산
[안태호 기자]
▲ 12월 8일 낮 12시, 청계광장에서 열린 대북삐라 패러디 퍼포먼스는 경찰의 난입으로 10여분만에 끝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몰려든 전경들이 작가들을 밀쳐내고 손에서 풍선을 빼앗아 터뜨리고 짓이기는 데는 채 5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2008년 12월 8일 낮 12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려던 작가들의 퍼포먼스는 시작한지 10여분 만에 경찰의 진압으로 무산됐다.
자신들을 ‘나라 걱정 많은 예술가’라고 밝힌 10여명의 미술가들은 이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주제의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최근 일부 우익단체들의 대북삐라를 패러디한 이번 퍼포먼스는 현 시국을 꼬집는 말들을 매단 소형 풍선들과 함께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담은 대형풍선을 띄운다는 계획으로 준비되었다.
작가들은 현장에서 각자 작은 풍선을 손에 들고 섰다. 풍선 밑에는 현장에서 직접 쓴 문구가 휘날렸다. ‘아! 캄캄하다’, ‘윽! 해고 칼바람’, ‘우! 유인촌 문화계 완장’, ‘오! 반북풍선지원법’, ‘억!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2MB 제발 아무것도 하지마’ 등의 문구가 청계광장 허공에 걸렸다. 이어, 이들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우익단체들의 삐라살포 비닐풍선과 같은 모양의 대형 비닐풍선을 만들어 세웠다. 헬륨가스를 주입해 만든 풍선의 양쪽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지금 주식사면 일년 안에 부자된데 뭥미’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그러나 대형풍선을 세우고 작가들이 퍼포먼스의 취지를 설명하려던 순간, 50여명의 경찰병력이 난입하면서 현장은 몸싸움과 고성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대북삐라는 막지도 않으면서 작가들이 풍선 몇 개 날리는 건 무섭냐”, “작가들이 퍼포먼스 하는 걸 무슨 이유로 막느냐”, “대한민국에는 표현의 자유도 없느냐”며 작가들이 항의하고 나섰지만 전경들은 아무런 동요나 표정없이 작가들의 손에서 풍선을 앗아들고 찢어댈 뿐이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에게 작가들이 항의했지만 “상부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일”이라는 짤막한 대답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퍼포먼스가 좌절되자 작가들은 준비한 현수막을 펼치고 약식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조각가 김운성 씨는 “미술가들이 현재 사회에 대해 풍자와 해학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퍼포먼스를 채 하기도 전에 경찰병력이 와서 막았다. 대북단체들은 여러 차례 삐라를 날렸지만 한번도 제지당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한 번 만에 터뜨리고 망가뜨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자회견을 마친 작가들은 종로경찰서를 방문해 퍼포먼스를 진압한 이유와 근거에 대해 따져묻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경찰의 마구잡이식 공권력 집행에 대해 항의했다. 이들은 앞으로 ‘벌거벗은 임금님’, ‘양치기 임금님’ 등의 퍼포먼스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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