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이어 김정헌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해임됐다. 등쌀에 못 이겨 이미 자리를 떠난 기관장들을 포함하면, 이 정부는 이제 문화예술계의 밥그릇을 독차지하게 됐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문화계를 이 정부가 자기 뜻대로 정복한 셈이다.
이 정권이 뽑아버린 것은 스스로 명분으로 내세우는 ‘지난 정부의 정치색’이 아니라,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문화예술인의 자존심이다. 김정헌 위원장이나 김윤수 관장은 정치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예술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온갖 불이익을 감수했던 이들이다. ‘순수’라는 이름 아래 주류 문화예술계가 독재정권의 수청이나 들던 시절, 검은 걸 검다 하고 흰 것을 희다 했다. 고통받는 이들 편에서 그들의 피와 눈물을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을 펼쳐 보였다. 그로 말미암아 투옥을 당하고, 해직당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문화계까지 정권의 시녀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 정권으로선 그들이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일은 아니었다.
정권은 민주적 제도와 절차도 뽑아 버렸다. 김정헌 위원장 해임 사유는 기금의 부적절한 운용과 손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적절 여부의 기준은 이번 기금운용 감사과정에서 감사원이 권고한 것이다. 뒤늦게 정해진 기준을 해임 사유로 삼는 건 누가 보더라도 의도적이다. 사실, 그런 혐의는 다름아닌 이 정부에 먼저 적용돼야 한다. 대통령은 “지금은 펀드를 살 때”라든가, “주식 사면 1년 뒤 부자가 된다”는 말로 국민을 교란했고, 정부는 외환시장에 무모하게 개입해 국민연금기금에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보게 했다.
김윤수 관장이 성실의 의무를 어겼다는 해임 사유도 황당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문제 삼은 성실 의무 위반 문제로는 이미 국립현대미술관이 기관경고를 받은 바 있다. 같은 일을 또 해임사유로 삼겠다는 건 억지스럽다. 성실 의무를 들이대려면 먼저 유인촌 장관부터 해임해야 할 것이다. 그는 국회에서 보도진에게 욕지거리와 삿대질을 하며 취재하지 말라고 위협했다. 그건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독재자의 눈에 예술은 정권의 시녀다. 그 비판정신을 못 견딘다. 그 정신을 거세하는 게 문화부의 구실이 됐다는 말인가. 이제 문화예술은 깊고 어두운 터널로 들어섰다. 비판정신은 그런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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