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할 만한 국립현대미술관 갖고 싶다
[경기일보 2008-12-24]
미술계가 시끄럽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3월 12일 광화문문화포럼에서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지닌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표명한 뒤, 참여정부 성향의 문화예술 단체장들이 줄줄이 해임되었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도 정권이 교체된 뒤에 거세지는 퇴임 압박과 이어진 특별감사를 통해 전격 해임됐다. 명목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여행용 가방’의 구입절차 및 구입가 문제로 정부의 감사를 받았고 이와 관련해 국가공무원법을 어겼다는 이유였지만, 이것은 이미 작년에 경고 처분을 받았던 사안이라 중복징계라는 세간의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기관장 해임의 근거로는 너무나 허약한 명분인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06년부터 미술관장이 인사와 예산 운용의 자율권을 갖고 경영하는 책임경영기관으로 전환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2007년 1월부터 시행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장되어 있는데 이 무슨 일인가? 이를 두고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물갈이용 코드 인사 준비작업’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전 관장 해임 직후 이미 공고된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를 1주일가량 연장한 까닭에도 무성한 소문들이 잦아들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개방형 직위 공모 방식으로 선발 중인 차기 관장직 공모에서 지난 12일 1차 면접을 통해 10명으로부터 3명으로 최종 후보가 압축되었다.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세분의 최종 후보자 중 어떠한 분도 일각에서 제기하는 현 정부의 ‘코드 인사 사전 작업’ 논란에 해당되지 않았으면 싶다. 그 누가 관장이 되든 논란거리에 휩쓸려서 세상에 내놓고 보여주기 부끄러운 국립현대미술관이 더 이상은 되지 않도록 열정을 다해 이끌어주길 바랄 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국전’의 운영을 위해 경복궁에 첫걸음을 내디딘 이래, 덕수궁 석조전과 과천 신축 건물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 40년에 이르는 역사 동안 탈도 많고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행정직과 미술전문직의 날선 대립,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학예연구사의 비정규직제, 책임운영기관 변모에 따른 미술계의 반발, 창작스튜디오와 미술은행 설립과 운영에 따른 혹독한 비판이 뒤따르기는 했지만 역대 관장의 노고마저 폄하해 내기에는 아쉬운 무엇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근본적 개혁에 대해서는 미술계 인사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세상에 내놓아 자랑할 만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우리도 갖고 싶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변모하는 문화정책도 그러하지만, 관장이 바뀔 때마다 급변하는 미술관 경영의 향방이 이제는 부디 안정되길 바란다.
이전 관장의 노하우를 이어받고 미술관이 헤쳐 나가야할 새로운 청사진을 올바로 제시하는 미술관장의 역할이 그만큼 막대해졌다. 이 자리가 더 이상 노년의 작가들을 위한 명예직으로 여겨지거나 미술현장에 어두워진 무능한 이론가를 위한 마지막 보양처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아가 순수미술을 시장주의의 눈으로 살피고 경영의 잣대로 품고자 하는 이들의 야망의 실험대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순수미술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발한 행보를 통해 한국미술 발전의 대계를 거침없이 올려낼 수 있는 일꾼이자 우리 미술의 위상을 아시아와 국제미술의 큰 틀 속에서 고민하고 그려낼 수 있는 영민한 지략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달라지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보길 기대해 본다. 우리도 이제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국립현대미술관을 갖고 싶은 까닭이다.
/김성호 쿤스트독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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