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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기고]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싼 3가지 괴담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7. 24.
최근 정부가 추진중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와 학예직과 행정직의 '복수직급화'가 미술계에 논란을 부르고 있다. 이와 관련 문화연대 상임공동대표인 김정헌(공주대 미술교육과 교수)씨가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관련사안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싣는다. 이와 관련된 반박글도 언제건 환영한다...편집자 주


현대미술관은 유폐된 고성(古城)?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 현대미술관은 과천에 있다. 이 현대 미술관에 전시를 보려고 하면 단단히 정신적, 육체적 무장을 해야 한다. 청계산 안에 자리 잡고 있어 공기는 청정하지만 전시장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이 문제다.

4호선 전철역 대공원역에서 내려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20분 간격의 유료 셔틀버스를 타든지 그 너른 주차장을 가로질러 어린이대공원에서 운영하는 코끼리열차를 타고 동물원(하긴 내가 보진 못했지만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도 있었다)을 거쳐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 가든가 운동 삼아 조깅복을 입고 걸어 가든가, 꼬불꼬불한 산길을 자가용을 타고 가든가 해야 한다. 어째든 4km를 가야 미술관이 나타난다.

이러한 미술관에 도달하는 어려운 방법 때문인지 아니면 건물 모양 때문인지 현대미술관은 나에게 마치 서양의 중세시대 성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미술관 근처의 어린이 놀이기구들은 어김없이 돈키호테의 풍차들처럼 버티고 있으니 미술관이 무슨 괴물이 살고 있는 성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이상할 지경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화가로서 과천에 있는 현대미술관만 생각하면 마치 '현대미술'이 괴물이 지키고 있는 오래된 성에 유폐돼있다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화가가 그러하니 일반 관객들에겐 현대미술관이 어떤 이미지로 각인될까?

산 속에 유폐돼있다시피 한 현대미술관에 문화관광부도 아닌 행정자치부가 나서 난데없이 '책임운영기관'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춤을 추란다. 책임운영기관이란 그야말로 기관장이 책임을 지고 운영하는 기관을 말한다. 그래서 잘만 운영하면 예산권과 인사권 등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거다. 겉으로 보면 대국민 서비스 강화를 위하여 무사 안일의 공무원 조직을 개혁하겠다는 취지로도 읽힐 수 있는 데 여기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 이 일을 추진하는데 해당 기관인 현대미술관 쪽이나 미술계에 한 마디 의논이 없었다. 부처마다 가장 힘없는 기관을 추천 받아 행자부에서 찍어 버렸다고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을 지경이다. 공론화 과정이 전혀 없었음은 물론 책임운영기관화에 따른 국고 지원과 준비과정에 대한 명시나 논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 또한 여러 가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책임운영기관화"가 안고 있는 함정

책임운영기관으로 나서서 돈벌이되는 대형 전시사업만 벌이라니 미술관의 원래 기능인 미술품의 학예연구, 보전, 교육 기능은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위축될 때로 위축된 미술계 내부사정을 감안하면 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라는 행정 편의적인 일방조치는 이 무더운 삼복더위에 한 화가를 으스스 하게 만든다.


괴담은 하나 더 있다. 바로 '문화관광부 직제개정 추진계획’안에 들어 있는 현대미술관과 관련된 내용이다. 혁신 차원에서 정부 전체의 새로운 직제개편에 맞춰 문광부도 새로운 직제개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환영을 했으면 했지 반대를 할 이유는 없다.

우연히 입수된 이 추진계획안을 들여다보니 직제개정 방향이나 내용들이 대부분 긍정적이다. 특히 문광부에서 앞서 이창동 장관 때 제시했던 '21세기 새로운 문화비전'과 '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 등의 문화정책들을 뒷받침하기 위한 직제와 기능개편은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미술관과 같은 소속기관의 정책역량 강화를 위해 본부의 정책기능을 이관토록 한 계획도 바람직한 조치들로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인 직제개편의 바람직한 방향과는 달리 기능 및 정원 조정의 세부사항으로 내려갈수록 이야기는 틀려진다. 예를 들어 박물관, 미술관 등 소속기관의 전문직인 학예연구직을 계약직화 하는 계획은 결국 전문직의 신분 불안을 초래하여 안정된 학예연구에 대한 기능을 저해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개악은 소위 행정전문성 강화를 내세운 행정사무직과 학예연구사의 '복수직급화' 추진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대미술관의 경우 학예연구직에 비해 행정기술직의 비대화가 항상 문제였는데 그 위에 학예연구직을 행정요원으로, 행정6급을 학예연구사로 배치한다는 발상은 아예 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 기능을 없애겠다는 조치와 다를 바 없다. 왜 이런 발상을 했을까? 행정-기술-학예는 공무원 조직에서 아무렇게나 뒤섞어 놓거나 호환 가능한 기능들이 아니다. 현대미술관처럼 복잡한 개념에 의해 분화돼 가고 있는 ‘현대미술’을 다루는 기관은 더욱 그러하다.

학예연구사와 행정사무직의 '복수직급화'를 추진한다고?

잘 알려진 대로 한 전시가 상당한 시간적 거리를 두고 계획되어 작가와 출품작들이 선정되고 섭외돼야 그 전시는 성공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보통 2~3년 이상 기획전시를 진행시킨다.

한 번 가정을 해보자. A라는 행정직에 있는 사람이 학예직으로 옮겨 한 전시의 기획이나 그 전시의 개념, 특성을 익혀 전문가 비슷한 역할을 하려면 적어도 4~5년 이상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 이 A는 유사(?) 학예사 노릇을 시작하자마자 또 순환보직에 걸려 행정직으로 옮겨야 한다면 이는 현대미술관의 업무의 손실일 뿐만 아니라 A의 개인적 불행이기도하다. 전문직인 학예직에 대한 배려 없이 행정직 기능을 배치해도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술과 음악 등의 기초예술을 황폐화시킬 뿐이다.

한 나라의 공공문화기반 시설인 현대미술관이 시민들이 접근하기 좋은 장소에 위치한다면 문화적 삶을 고양시킬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행복지수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좋은 미술관의 존재는 한 화가가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상상력과 열정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모든 화가들은 좋은 장소와 좋은 공간에서 많은 관객들에 둘러싸이기를 본능적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화가들은 자기의 작품이 전문 학예사들에 의해 연구되고 보관되고 전시되고 비평되기를 바란다. 그것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안한 신분으로서가 아니라 전문적 학예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안정된 위치에서 말이다.

직제개편권을 틀어진 행정자치부에 의해 아무런 공론화 과정이나 책임운영에 대한 보장도 없이 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선정하는 일 따위들이 알게 모르게 시민들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화가와 시민들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기까지 하다.

현대미술관을 둘러싼 이러한 좋지 않은 소식을 접했을 때 작품에 대한 의욕을 잃거나 위축되는 화가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쓸데없는 상상력이 유별난 나로서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산 속에 유폐돼 있는 현대미술관이 내는 신음소리로 들린다. 이러한 괴담(?)이 더위 먹은 나한테만 들리는 환청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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