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2시. 서울시 양천구 목동 예술인회관 앞에는 100여명의 예술인들이 모였다. 각자 준비한 예술작품을 든 채. 이들은 이 자리에서 두시간 남짓 “5년째 방치돼 있는 예술인회관”을 무단점거하는 ‘오아시스 프로그램’의 첫 출발을 알리는 모델하우스 방문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게릴라 퍼포먼스와 사과문 전시회, 자리추첨 퍼포먼스, 움직이는 전시회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8월15일 입주예정일까지 매주 토요일 목동 예술인회관과 대학로 예총 앞에서 게릴라 페스티벌과 퍼포먼스를 진행,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알릴 계획이다.
그러나 예총쪽은 이달 22일 공개입찰 광고를 시작으로 5년째 방치했던 예술인회관 건립사업을 재개할 예정이어서 이를 둘러싼 ‘오아시스 프로젝트’팀과 예총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 장면 1. 게릴라 퍼포먼스와 사과문 전시회
△ 오아시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이원재씨가 사진가 노순택씨가 예술인회관 건물 공사 외벽에 쓴 문구를 물을 뿌리며 지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모델하우스 방문 퍼포먼스는 오후 1시 실질적으로 ‘오아시스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있는 김윤환씨와 김현숙씨의 ‘게릴라 퍼포먼스’로 시작됐다. 포크레인에 나눠탄 두 사람은 파란색과 노란색 천을 들고 등장했다. 이들은 퍼포먼스가 끝난 뒤 “지난 5년동안 예술인 없이 쓸쓸하게 보내온 예술인회관이여. 이제는 예술인들이 따뜻한 예술의 마음으로 그대에게 다가갈 것이며, 더 이상 당신을 외롭게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글을 낭독했다.
이어 예술인회관 입주 신청을 한 100여명의 예술가들이 사과그림이 걸려 있는 문을 통과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예총의 사과문 요구에 대한 예술가들의 답변을 퍼포먼스로 구성한 것이다.
이들은 “예술가들을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예총이라는 특정 권력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예술인회관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첫 번째 점거대상을 이곳으로 정했다”며 “예술인회관은 본래 목적대로 예술가들의 창작과 시민들의 문화권리를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민찬(사진가)씨는 “오아시스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우리의 요구가 움직이는 행동으로 보여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우리의 뜻대로 잘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에서 온 조성주(화가)씨는 “청주에서도 점거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며 “많이 배우고 돌아가 많은 예술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지원(화가)씨도 “예술인회관을 특정단체나 특정집단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시민과 예술가를 위한 현대미술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송이(시인)씨는 이날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이 선정한 ‘가장 좋아하는 단어’ 30개를 활용해 ‘교향곡 제5번 c단조 작품 67’이라는 시를 직접 지어 참가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 자리추첨 퍼포먼스와 좌담회, 움직이는 전시회
△ 이날 행사중의 하나인 자리추첨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는 예술가들. |
예술가 개개인이 가져온 예술작품(피켓 또는 우산형태)을 선보인 뒤 2시45분께부터 자리추첨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지점토를 반죽한 것을 회전판에 맞추는, 일종의 추첨을 통해 개인의 작업실 층수를 배정하는 일종의 행사 퍼포먼스.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층수를 배정받은 사람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 반면 높은 층수를 배정받은 사람들은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작업실 층 배정이 끝난 뒤에는 같은 층에 입주하게 될 예술가들끼리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비 때문에 종종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으나, 행사는 즐거운 축제 형식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큰 사고 없이 치러졌다.
행사를 진행한 김윤환씨는 “예술인회관을 다시 살려보자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취지로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이런 행사에 참여해 기쁘다”며 “예술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넓은 작업실을 얻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예술인들이 예술가를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밝혔다.
△ 움직이는 전시회 한 장면. |
김윤환씨는 또 “예총쪽에서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자는 의사를 표현해 와 어느정도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오늘 행사 역시 참여하는 예술가의 규모는 아담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윤환씨는 5얼26일 예술인회관 안에서 진행된 ‘숨바꼭질’ 퍼포먼스와 관련 20일 오후 3시 마포경찰서에 출두할 예정이다.
◇ 예총, “예술인들의 예술행위 이해하지만 불법”
한편, 예총은 예술인들이 진행하고 있는 ‘오아시스 프로젝트’에 대해 불법이라며,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예총쪽은 “예술인회관 건립사업이 시공사인 쌍용건설의 부도로 중단됐지만 6월말 감사가 종료됐고, 문화관광부쪽에서도 공사재개를 통보해 이달 22일 입찰공고를 시작으로 8월 중에 공사가 재개될 것”이라며 “예술인들의 예술행위는 이해하지만 건물 입주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공사가 재개될 시점에서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 오아시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회관 입주를 희망하는 예술인들은 자리추첨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입주할 층별로 나눠 담소를 나눴다. 김미영 기자 |
추승연 예총 예술인회관 건립사업본부 감독은 오아이스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도 “이 건물은 대형 미준공 건물로 기능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건물임에도 300여개의 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분양광고를 해 분양신청자를 기만하고 있다”며 “전기, 수도, 배관시설이 안된 상태에서 입주한다는 것 자체가 허구적인 논리이며, 결국 예술인들만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윤환씨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불법으로 예술인회관을 점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 재개되기 전까지만이라도 예술가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예술가들의 의지표현”이라며 “위법·탈법 행위로만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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