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빼앗긴지 15년 당장 돌려줘야
통일그림 ‘모내기’ 작가 신학철
“마음으로는 당장이라도 그림을 되돌려 받고 싶습니다…”
북한을 찬양한 이적표현물이란 이유로 당국에 압수된 통일그림 <모내기>의 작가 신학철(61)씨. 그는 체념어린 표정으로 줄담배만 피웠다. 행복한 북한과 혼란스런 남한을 대비시켰다는 죄목으로 89년 공안당국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이 그림은 1,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파기해 돌려보내면서 2000년 서울지법에서 징역 10월형 선고유예와 그림 몰수 등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대법원 상고도 기각당하자 신씨는 국제연합(유엔)인권이사회에 진정서를 냈고, 지난달 10일 이사회는 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반환·보상권고를 법무부에 통보했다. 하지만 이 희소식을 그는 8일 뒤 한 방송국 기자의 전화를 받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담당 변호사도 몰랐어요. 쉬쉬한 듯한 법무부가 섭섭했지만 애초엔 돌려받을 거란 희망도 있었어요… 그런데 요사이 법무부쪽 말을 들어보니 “국가기관의 위법행위가 없다”는 입장이더군요. 변호사도 그냥 상징적인 통보라고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합니다. 자식 같은 그림을 15년 동안 생이별한 사실 자체가 야만적이지 않나요. 이제 국가보안법 폐지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만큼 정부의 과감한 선처를 기대합니다.”
유엔 반환·봇아 권고에도 법무부 20여일째 연락없어
“자식같은 그림 창고에 쳐박아둔 야만적 행위 끝내야”
<모내기>는 130×160cm크기의 대작. 상단의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봄에 모내기하고 들밥 먹고 가을에 수확하고 잔치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위아래로 놓인 통일염원도다. “87년 민미협 통일전에 출품하려고 구상했죠. 통일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희망을 명쾌한 구도와 색조의 이발소그림 풍에 담으려 했던 겁니다.” 그는 고향인 경북 금릉군 감문면 농촌을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외세와 군사독재 정권, 코카콜라 따위의 외래문화 등 작가가 생각한 반통일적 이미지들을 농부의 써래질로 밀쳐내고 백두산 아래 한반도에서 풍성한 통일 수확을 기뻐하는 상징적 구도를 밝은 터치의 색조아래 모두어 담았다. 통일과업을 은유한 사계절에 걸친 농사과정이 특유의 수직 파노라마 구도 아래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이 그림은 칙칙하고 냉소적인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밝고 명쾌한 메시지가 돋보인다. 그러나 “백두산에 태극기 휘날리자며 북진통일을 다그쳤던 이승만 정권 때 유년시절의 구호가 떠올라 그려넣은 백두산이 이적표현물로 찍히는 화근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89년 인천 재야청년단체가 기금사업하려고 부채를 만들면서 <모내기>그림을 넣은 게 발단이었어요. 누가 그림이 이상하다고 신고를 했던 듯 해요. 곧 그림에 대한 사상감정이 진행됐죠. 시흥동 작업실에 경찰이 들이닥쳐 화틀에서 그림을 떼어 둘둘 말아 가져갔어요. ”
공안정국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 검경은 백두산이 있는 그림 윗쪽의 농부들 잔치 모습이 평화로운 북한을, 써레질로 군사독재정권과 외세문물을 쓸어내리는 하단을 남한 현실로 대조시켰다며 문제를 삼았다. 89년 기소된 이후 그는 선고유예까지 10년을 넘는 법정싸움에 몸과 마음을 크게 상했다. 그림을 빼앗긴지 15년, <모내기>는 꼬깃꼬깃 접혀 서류봉투에 넣어진 채 검찰창고에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지난 연말 회고전에서 후학들이 그린 <모내기>패러디 그림을 보며 원작의 그리움을 다독였던 신씨는 지난주초 한 기자와 <모내기>열람 신청을 했지만 “결재에 시간이 걸린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보상은 바라지도 않고, 작품 돌려받는 게 소원입니다. 작품을 폐기해 국제적으로 나라가 창피당하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 꼭 좀 전해주세요. ”그가 거푸 던진 당부였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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